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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호] 서울대 졸업식 변천사(끝) / 감동이 있는“축제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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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窓)”이었다면 오늘날 학위수여식은 축제의 양상을 띤다. 2011년부터“감동이 있는 학위수여식”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거 학위수여식이 졸업식사 낭독과 학위 수여에 그쳤던 것과 달리 그 해에는 특별강연 및 특별 축하공연을 마련하여 눈길을 끌었다. 김난도(사법 82학번) 소비자아동학부 교수가 연단에 올라‘너의 계절을 준비하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고, 40여 명의 교수들로 구성된 서울대 교수 합창단이 아이돌그룹‘2AM’의‘죽어도 못 보내’를 불러 졸업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김수정(산업미술 83학번) 디자인학부 교수는 종합체육관 내부 인테리어를 확 바꿔 서울대 상징색인 청색을 활용한 단순하고 미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상징색은 이듬해 새롭게 선보인 학위복에도 적용됐다. 한복 디자이너인 의류학과 김민자 교수가 조선시대 선비들의 의상인 학창의를 본 뜨고 색상을 서울대 상징색인 청색으로 하여 서울대 고유의 학위복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 후에도 졸업식에서는 본행사에 앞서 축하 연주를 하고, 졸업생들의 재학시절 추억을 담은 사진을 슬라이드로 정리해 상영하는 등 졸업생이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는 다채로운 부대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 이 같은 시도로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어진 시대에 취업난까지 가중되면서 급감하는 학위수여식 참석률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서울대 졸업식은 겉모습뿐 아니라 행사의 내용에서도 의미를 더해갔다. 그 동안 학생대표 연설은 성적이 가장 우수한 학생이 맡아왔으나, 이후에는 성적과 상관없이 타의 귀감이 될만한 대학생활을 한 학생이 졸업생을 대표하게 하였다.

2014년 2월 학위수여식에서는 서울대 학군단(ROTC) 첫 여성 장교후보생인 최주연(독어 10학번) 학생이 연단에 섰다. 그는“서울대 학생이자 학군단 후보생으로서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분명히 달라진 게 있다면 두렵더라도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을 자신은 있다는 것이다. 지금 느끼는 이 마음을 잊지 말고 나아가 좋은 결실을 맺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2015년 8월 학위수여식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정원희(경영 09학번) 학생이 대표연설을 했다. 그는“신체의 특수성 때문에 조금 다른 눈높이에서 세상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삶이 풍성해졌다. 힘겹게만 느껴지는 상황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 뿐이다. 불가능 속에서 가능함을 증명해 보이는 삶을 살며, 이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우리가 되자”고 말했다.

2016년 2월 학위수여식에서는 몽골 유학생 우간바야르 군(정치외교 11학번)이 대표연설을 했다. 서울대 총동창회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여 학내 외국인학생회(SISA) 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서울대학생들이 뜨거운 열정과 인간의 가능성을 알게 해 주었다. 서울대생이 된 것만으로도 또 다른 인생의 도전이었다. 다가올 어려움보다는 미래의 희망을 보고 함께 나아가자”고 당부했다.


서울대 졸업식 축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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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초기 졸업식 축사는 대통령이 맡는 게 관행이었고, 대통령의 축사인 만큼 시대적 소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주로 담겼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3년 3월 졸업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은“이번에 졸업하는 학사 제군들 중 90%가 사관후보생에 자원한 것은 우리 국군의 위신과 실력을 더욱 빛내는 것으로 기뻐해 마지 않는 바”라고 치하했으며, 박정희 대통령은“대학은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민족중흥의 대원천이자 근대화의 추진 역량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으론 20년 만인 1994년 모교 졸업식에 참석한 김영삼 대통령은 “투쟁이 영웅시되던 시대는 갔다. 대학이 개혁과 창조의 선두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세계와 인류에 창조적으로 기여하기 위해 야망을 가질 것을 당부하면서 “개인과 나라의 앞길을 거침없이 열어가 달라”고 강조했다.
1999년 김종필(사대 46학번) 국무총리는 ‘글로벌 시티즌십’을 주문했으며,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은“여러분이 경쟁하고 협력해야 할 상대는 같은 한국인만이 아니라 선진국의 젊은이들임을 명심하라”고 말했다. 그는 또“인생의 성공은 대통령이 되는 것도, 교수가 되는 것도, 사장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감동이 있는 학위수여식”이 시작된 2011년부터는 총장뿐 아니라 학내와 유명인사들의 축사 순서를 넣었다.
2012년 2월 학위수여식에서는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이 첫 비동문 연사로 초청되었다. 그는“서울대 입학에 3번이나 도전해 낙방했지만 고난과 실패가 큰 재산이 됐다, 농부의 아들에서 글로벌 기업인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가장 원초적인 힘은 도전 정신”이었다고 말했다.

2014년 8월 행사에서는 한학자로서는 처음으로 성백효 해동경사연구소장이 축사를 했다. 그는 노자와 논어 등의 가르침을 인용하며“복을 누리는 사람이 되기보다 복의 터전을 쌓는 사람이 돼 달라”고 말했다.

2015년 2월 행사에서 인터파크 이기형(천문 82학번) 대표는 국내 최초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성공시킨 비결로“대담한 도전·주인의식·이타심”을 꼽았다. 그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지금 가는 길을 택한다. 절벽을 만나면 지금보다 오히려 뒤쳐지게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새로운 길에 도전하고 도전을 통해 실제로 위험은 생각보다 높지않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 해 8월 행사에서 인권전문가 정진성(사회 72학번) 사회학과 교수는“유신개헌이 있던 해에 대학에 입학해 민주화선언 두 해 전 대학교수가 됐다. 그야말로 대격랑기를 학생으로 보내면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균형감각을 갖고 남을 배려하며 자신의 영역에서 언제나 열심히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2016년 2월 학위수여식에서는 미국 건축설계회사 팀하스의 창립자 하형록 회장이 축사를 했다, 그는“명사로 표현되는 사회적 지위가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고 희생하는 동사형 삶을 추구한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었다, 두 번의 심장이식 수술을 겪으며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살기로 다짐했다”고 말해 감동을 전했다.
그 해 8월 행사에서는 김인권(의학 69학번) 여수애양병원 명예원장이 축사를 했다. 그는“첫 직장을 여수의 한센병 환자와 소아마비 장애자를 치료하는 병원으로 정했다. 그 후 34년간 흔들림 없이 봉직한 제일 큰 힘은 내가 선택했고, 그것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라며 “직장을 선택할 때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결정해라. 어떤 직장에 들어가면 우직하게 열심히 일하라”고 조언했다.

2019년 2월 행사 때는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미학 91학번)가 축사를 통해 방탄소년단과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성장사를 밝혔다. 그는 오늘날 자신을 만든 힘은 ‘화’였다고 하면서 “앞으로의 여정에는 무수한 부조리와 몰상식이 존재한다, 분노의 화신 방시혁처럼 여러분도 분노하고 맞서 싸우기를 당부한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되고, 이 사회가 변화한다”고 말했다.
같은 해 8월 개최된 후기 학위수여식에는 여성 연사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신수정 당시 서울대 총동창회장과 노정혜(미생물 75학번)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이 축사를 맡았으며, 졸업생 대표연설도 여성창업자인 강미나(경영 13학번) 학생이 맡았다. 또한 단대별 성적 최우수상을 받은 졸업생 또한 11명 중 6명이 여성이어서 ‘여성 동문의 힘’을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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