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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호] 서울대 졸업식 변천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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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첫 참석한 1963년 제17회 졸업식 


“시국의 창(窓)”이 된 학위수여식

​1960년에 4.19 혁명이 일어나고, 그 이듬해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군사정부는 1962년부터 매년 4월에 시작하는 학기제를 3월로 한 달 앞당겼다. 매년 1월부터 3월까지였던 겨울방학을 가장 추운 12월~2월로 변경하면 난방비 예산이 줄어든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대학교도 1962년 제16회 졸업식부터는 학기말인 2월 26일에 갖게 되었다.
이후 서울대 졸업식은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였으나 시대의 바뀜과 사회의 발전을 겪으면서 풍경을 달리해 왔다.

개교 초기 학위수여식은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 등‘3부 요인’이 참석하는 국가적 행사였다. 1949년 서울대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그 후에도 매년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했고, 1962년 졸업식에는 윤보선 전 대통령이 참석했다. 1963년 이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하였으나 유신(維新) 직후인 1974년 제28회 졸업식에서 학생들이 뒤돌아 앉는 사태가 발생하자 그 후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1975년 2월 제29회 졸업식은 동숭동 캠퍼스에서의 마지막 졸업식이었다. 이 졸업식에는 박 대통령 대신 김종필 국무총리가 치사(致辭)를 했다. 김 총리는 1946년 서울사대의 전신인 경성사범학교에 입학하여 3년을 다녔으므로 서울대 동문으로 대우 받았다.

서울대학교는 1975년 3월에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여 학교 대운동장에서 졸업식을 가졌는데 그 이후에도 국무총리가 대통령을 대신하여 졸업식에 참석했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 대통령이 사망하고 신군부가 정국을 주도하다가 1981년 2월 전두환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이 무렵에 개최된 서울대 졸업식 역시 남덕우 국무총리와 이호 입법회의 의장, 이영섭 대법원장 등 3부요인이 참석했으나 학생들로부터 집단 야유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1982년 졸업식부터는 국무총리대신 문교부장관이 참석했다. 물론 이 때에도 국회의장과 대법원장은 참석했고, 대통령상과 국회의장상, 대법원장상도 수여되었다. 1986년 졸업식에서는 당시 박봉식 총장이 졸업식사를 읽으려는 순간 2,000여명의 학부 졸업생들이“우”하는 야유와 함께‘아침이슬’을 부르면서 일제히 퇴장했다. 이어 손제석 문교부 장관이 치사를 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대학원 졸업생1,000여 명이 자리를 떠 졸업식이 파행을 겪었다. 다음 해인 1987년에도 졸업생들은 박 총장에게 등을 돌리고 앉은 채 노래를 불렀고, 손 장관을 향해“물러가라”고 야유하며 6,200명의 학생들이 집단 퇴장했다. 이는 5공화국 군사정권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민주화선언(1987년 6월 29일) 이후인 1988년 졸업식 때는 대운동장에서 열리는 공식 졸업식과 별도로 관악캠퍼스 교내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민주졸업식’을 개최하여 박종철 열사(언어 84학번)에 대한 명예졸업을 요구하기도 했다. 1987년 1월 민주화운동에 참가했다가 수사기관의 고문 끝에 1987년 1월 숨진 동문이다. 참고로 서울대는 2001년 박종철 동문이 민주화운동에 공헌한 점을 인정해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이런 사례가 계속되자 학교 당국에서는 ‘졸업식행사개선위원회’를 만들어 졸업식 전반에 대한 변화를 꾀했다. 1989년 학위수여식부터는 대통령상(전체 수석졸업), 국무총리상 등 외부인사들의 상을 모두‘총장상’으로 바꾸고 외부인사 초청을 없애 순수학내 행사로 치르게 됐다. ‘졸업식' 대신 '학위수여식'이란 명칭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또 그 동안에는 학부 졸업을 더 중요시하여 학부생들이 학사학위를 먼저 받아왔으나 이후부터는 박사-석사-학사 순으로 수여하게 됐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시위사태가 누그러졌고, 서울대 졸업식도 점차 질서를 찾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참석한 1974년으로부터 20년 후인 1994년에 서울대 출신인 김영삼 대통령(철학 47학번)이 자연스럽게 모교 학위수여식에 참석했다. 그해 800여 졸업생과 5,000여 명의 학부모들이 참석한 학위수여식에서 김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친 여러 선배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문민시대를 열었다”고 말해 졸업생들의 박수를 받았다.

또 1997년부터는 그 동안 대운동장에 서 개최하던 학위수여식 장소를 종합체육관으로 옮겼다. 1999년 학위수여식 때는 1970년대에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 동문이 다시 국무총리가 되어 참석하고 축사를 했다. 그러나 이 때 학생들은 김 총리의 참석을 격렬하게 제지하고 관용 차량을 훼손하기도 했다.

다음 해인 2000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모교 졸업식에 참석했다. 이 졸업식에서 당시 이기준 총장이“대통령 부인 이희호 (교육 46학번) 여사가 서울대 사대를 졸업한 동문”이라고 말하자 박수가 터졌고, 일부 학생들은 휘파람을 불었다. 기분이 좋아진 김 대통령은“나도 준동창회원”이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2018년 8월엔 서울대 개교 이래 처음으로‘총장 없는 학위수여식’이 개최됐다. 신임 총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총장후보자의 성품 문제가 불거져 총장 공백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학위수여식은 박찬욱 교육부총장이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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