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호] 무역과 68학번들의 남도 여행기 / 김선용(무역 68, 선명회계법인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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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용(무역 68)




무역과 동기 5명이 지난 6월 초 전라남도 일대를 여행하고 왔다. 서울에서 광주까지는 열차를 타고 가고, 광주 송정역에서 승용차를 렌트하여 광주, 정읍, 고

창, 영광, 곡성, 여수, 순천, 화순, 장성, 담양 등 남도 땅을 두루 섭렵한 것이다. 3박 4일 동안 무려 500여 km를 주행했다.


첫째 날은 광주에서 출발하여 정읍을 거쳐 고창읍성을 돌아 보고 곡성으로 이동, 섬진강변의 장미 축제를 구경하고 고찰 태안사를 답사했다. 그 후 영광으로 향하여 석양 아래 아담한 정원을 갖춘 남도 전통 한정식 집에서 푸근한 남도 전통 만찬을 즐겼다. 

동동주를 곁들인 구수한 남도 밥상에 둘러 앉으니 혀끝에 윤기가 돌고, 이야기 꽂이 피어나고, 자연스레 time machine이 물레방아처럼 잘도 돌아갔다. 옛날 젊은 시절 추억의 재담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7곡(七曲) 노인들의 이마에는 주름살이 펴지고 은발에는 검은 색조마저 돋는 듯하였다. 늦은 밤 화순 숙소에서 첫날의 여장을 풀었다. 


둘째 날에는 화순의 운주사와 고인돌 공원을 산책했다. 우리나라는 선사시대 장례 문화의 유적인 고인돌의 세계적인 보존국으로, 특히 고창, 화순 일대에 고인돌이 많이 남겨져 있다. 우리가 자랑할만한 인류문화유산이다. 산길 따라 무수히 널린 고인돌들은 마치 하늘에서 내린 달이나 별 조각인 양 태고의 신비한 비밀을 가슴 깊이 품은 채 그 유구한 세월을 끌어안고 묵묵히 잠들어 있었다. 기념촬영을 하다 보니 고인돌은 영겁을 꿈꾸며 서 있는데 이제 7순의 우리들은 노인이 아니라 7개월짜리 젖먹이도 안 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수에 들어와 저녁 식사를 한 후 야간 해상 케이블카를 타 보고 여수 돌산도에 서 숙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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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에는 여수 향일암을 둘러 본 후 순천으로 이동 낙안읍성과 죽도봉 팔마비, 선암사를 둘러보았다. 순천 선암사는 아담했다. 특히 조계산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선녀가 올라 갔다는 아치형 돌다리 승선교(昇仙橋)와 대웅전 뒤에 매화 고목, 경내 정원에 은목서(銀木犀, 꽃나무의 일종), 난초, 석류, 탱자나무와 연못, 돌담길 등이 한데 어우러져 그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다소곳이 품어 내고 있었다. 

이곳 선암사는 할머님께서 내가 태중에 있을 때부터 기도 올리러 다니시던 절이기도 하다. 명작<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가 바로 이절에서 태어났다. 아마 그의 걸작 <태백산맥>에도 태중기도의 공덕과 사연이 혹 숨어 있지않나 싶다. 


광주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마지막 넷째날에는 먼저 장성으로 이동하여 필암서원과 청백리 박수량의 백비(白碑, 아무 글도 새기지 않은 비석) 묘소를 구경했다. 이어서 담양에 들려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의 사당인 평장사(平章祠)와 죽녹원, 소쇄원을 돌아 보았다. 죽녹원은 담양읍 성인산 일대에 조성된 넓은 대나무 숲이고, 소쇄원(瀟灑圓)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자연 속의 정원이다. 대나무 숲에는 수 많은 생명들, 그들의 애절한 함성이 하늘을 향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죽순이나, 인간의 생명이나, 대숲의 바람 소리나, 이따금 지지대는 새소리나 모두 우주 만물의 무변 장대한 조화의 거대한 그릇 속 물방울들이라는 만유일체의 신비한 섭리가 내 심장을 북소리처럼 두들겼다.


이번 여행길에 나서 보니 옛날 방랑시인 김삿갓은 짚신 둘러메고 집 떠나 고을마다 주막에서 잠을 자면서 고생도 많았겠지만, 구수한 민심과 세상 풍물을 두루 살피며 풍류객으로 떠도는 것도 제법 낭만이 있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선조들의 낭만이 서린 푸근한 민심의 주막집과 시골 장터가 사라져버려 그 진가를 맛볼 수 없는 것이 참 아쉬울 따름이다. 그나마 낙안읍성에는 둥근 초가 민속마을에 저자거리와 주막들이 옛자취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반가웠다. 친구 하나는 꼭 다시 찾아와 초가집 민박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주막과 장터가 없었다면 과연 김삿갓이 멋진 풍류의 시를 남길 수 있었을까?


내친 김에 다음에는 충청도와 경상도 지역을 나들이하겠다는 노욕마저 느껴졌다. 북한땅에는 길이 막혀 평생 못 가보는 것이 통탄할 일이다.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하니 육신이 힘들어 눕기 전에, 친우들이여 삼삼오오 떼를 지어 아름다운 풍물과 푸근한 인심이 넘치는 우리 강산을 자주 찾을지어다. 비록, 지팡이에 노쇠한 몸을 의지하더라도 우리가 돌아 갈 모태의 땅과 그 위에 서린 조상들의 숨결을 음미하면서 경건한 순례의 발걸음을 수()놓아 갈 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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