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호] 서울상대인 스토리/김중수(경제 66) 전 한국은행 총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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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수 (경제 66)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정책기조 전환은 올바른 선택”


오늘날 세계 경제는 경기가 침체되면서도 물가는 오르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막대한 자금을 풀었고, 여기에 공급망 애로까지 겹쳐 물가가 폭등하자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 동안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고자 임금을 과다하게 올린 데다가 재난지원금, 손실보상금 등으로 수백조원을 방출한 정부가 이제는 기준금리를 올리고 대출을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금리인상은 물가 안정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경기는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는 지난 7월 초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전 총재는 경제학자로서 중앙은행을 비롯하여 연구기관, 대학, 정부 부처 등에서 다양한 경륜을 쌓아 왔다.


김 전 총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연구교수로 있었다. 귀국후 KDI 연구위원, 대통령 경제비서관, OECD가입준비사무소장, 경제부총리 특별보좌관, 한국조세연구원장,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원장, KDI 원장을 역임했다. 2007년 한림대학교 총장에 취임했고,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주OECD 대사를 지냈으며, 2010~14년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2016년 다시 한림대 총장으로 복귀, 2020년 중임하여 지난 해 8월까지 재임했다. 지난 6월 14일에는 공익법인인 유한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요즘 국내외 경제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또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런지요.

국내외 모두 어려운 상황이지요. 단기적 난관보다는 장기적 전망이 밝지 않아 보인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성장잠재력이 저하되고, 정부와 가계부채가 급증한 것이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뇌관이라고 봅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교육∙경제규제 등 각종 경직적인 제도를 개방경제체제에 맞도록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합니다.

국외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기인한 불확실성이 문제이지만, 근본적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복원시키지 않으면 세계경제의 생산체계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과 중국을 위시한 주요 경제대국의 국제협력체제의 공고화 여부가 관건입니다.


오늘날의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은 2007-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양적완화로 유동성이 크게 증가한데다가 최근 코로나 팬데믹에 대처하기 위해 통화량을 급증시킨 것에 원인이 있으며, 여기에 공급망 문제가 추가되어 성장마저 침체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양태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단기적인 묘수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동안 누적되었던 정책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을 정직하게 국민에게 호소하여 동의를 얻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리고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하여 경제에 쌓여 있는 거품을 걷어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하고 있습니다만…

중앙은행의 일차적 책무는 물가안정이므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인상을 도모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단지, 수요 팽창에 더불어 비용상승 요인에 의해 경기침체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경제당국과의 정책협조를 통해 효과적인 정책 조합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경제가 개방된 상태에서 국내정책의 효과는 과거에 비해 제한적이라는 점도 유념해야 합니다.


금리인상으로 인한 금융기관 채권의 부실화와 가계부채의 부담 등은 피하기 어려운 것이므로 이에 대한 미시적인 세부적 구제책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원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여야 합니다. 통화당국의 노력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시각에서 통화∙재정∙금융정책간의 조화로운 공조가 요구됩니다.


지난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해 온 데 비해 새 정부는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이 경우 소득양극화가 더 심화되지는 않을까요?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글로벌 경제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비현실적 발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소기의 효과를 발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회의 성장동력을 훼손하는 부작용마저 유발합니다. 따라서 시장경제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방향으로의 정책기조 전환은 올바른 선택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소득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중위가계소득의 50% 미만으로 정의되는 빈곤 가계의 비율이 0.167로서 OECD 40개국 중 하위 7위에 해당하는 열악한 상황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소득양극화 해결의 첩경은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에 있습니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과 같은 경제부문은 민간에 맡기고, 정부는 환경, 사회안전,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등에 관한 역할을 강화하여야 합니다.


법인세율 인하와 양도세 완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대한 견해는? 세수가 줄면 재정적자가 더 확대되지 않을까요?

개방경제 하에서 조세문제를 국내 시각 위주로 대처하는 것은 국가경제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국제경쟁력을 저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국제 수준이나 규범에 상응하도록 조세제도를 수립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나라 기업들이 개방경제에서 적절하게 다른 나라와 경쟁하면서 경제활동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수 규모의 증감은 무엇보다도 성장기여 여부에 달려 있으므로 조세 국제경쟁력을 제고시켜 성장 제고에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세율을 완화하면 단기적으로는 세수가 줄 수 있습니다만, 소비의 활성화가 뒤따른다면 성장에 따른 세수증가로 보상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세수의 확대를 추구하기보다는 원칙적으로 재정지출 구조의 합리화로 재정균형을 이루어 나가는데 주력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


한국의 OECD 가입을 위해 크게 애쓰셨고, 후에 주OECD 대사가 되셨습니다. 당시 어떤 일을 하셨으며, 우리 정부가 지향해야 할 외교 및 통상전략은?

1995년 초부터 2년간 프랑스 파리에서 OECD 가입협상을 담당했습니다. 국민소득이 일만 달러에 도달한 즈음에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선진국 클럽에의 가입을 추진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제도와 정책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 협상이 대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웠습니다만, 한 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야만 선진국이 된다는 신념으로 협상에 임했었습니다. 말할 나위 없이, 단기간에 무리하게 개방하고 자유화를 추진하는 것의 부담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OECD 가입협상은 다자간 국제협력에관한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어떤 형태로든 국제사회와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개방정책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만 국제사회에서 소외되어서는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기 쉽지 않습니다. 역사상 국제활동을 소극적으로 하면서 국가가 발전한 사례가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또, 우리나라가 세계적 대국이 아닌 이상, 양자협력보다는 다자협력이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더 유리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가능한 한 많은 나라와 관계를 맺고 이들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것이 국가의 발전은 물론 존립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한림대 총장을 역임하시면서 중점을 두었던 일은? 우리나라 대학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세계적 교육평가기관인 영국의 QS(Quacquarelli Symonds)는 지난 수년 간 한림대를 세계적으로는 550위 정도, 국내적으로는 20위 정도로 평가했습니다. 작지만 경쟁력 있는 대학입니다. 저는 취임 이후, 의학 계열을 제외한 모든 학생은 복수전공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하고, 전공필수 과목은 거의 전부 폐지하였습니다. 또, 교양수업에서 문과와 이과의 구별을 없앴으며, 공과대학은 소프트웨어부문에 특화하는 구조조정을 하는 등 획기적 개혁을 통해 수요자 위주의 학생중심교육을 표방하였습니다.


제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는 융합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하여 한림대는 거의 20개에 달하는 융합전공을 도입함으로써 복수전공제도가 원활하게 정착되는 여건을 조성했습니다. 학과 위주 운영은 칸막이 행정으로 경직성을 갖게 되므로, 복수전공제도를 통해 학과보다는 전공 위주로 운영함으로써 칸막이의 폐해를 줄여나가고 대학운영의 유연성을 높여 나아갔습니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국제경쟁력은 세계 50위권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려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의 대학교육개혁이 필수 조건입니다. 무엇보다도 다양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획일적인 교육제도, 지식전달에 주력했던 기존의 대학교육에서 탈피하여 개인의 역량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 대학경쟁력의 제고를 위해서는 모든 대학이 서로 차별화되는 다양한 역량의 인재를 배출해 낼 수 있도록 자유로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 대학교육 개혁의 핵심 정책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최근에 유한재단 이사장을 맡으셨습니다. 유한재단은 어떠한 재단이며, 앞으로 중점 추진할 사업은?

유한재단은 설립자 고 유일한 박사의 전재산출연으로 1970년 설립된 공익법인입니다. 기업활동을 통해 모은 이윤은 전부사회공동체에 환원한다는 이념 하에 취약계층에 대한 장학사업, 무의탁 노인 및 취약계층을 돕는 사회복지사업, 사회봉사자시상, 북한출신 대학생 지원 등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업들은 지금시대에 이르러서야 소중하게 여기고 일반화되었지만 유한재단은 이미 반세기 전에 설립되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저는 앞으로 선진 민주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사회 각계각층의 민간부문도 이런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솔선수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갖고 각종사회봉사 활동에 진력할 계획입니다. 


최근 우리 동창회는 재학생들과의 연계 강화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선배를 능가하는 훌륭한 후배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랍니다. 사회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기 바라며, 이를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 받도록 자신을 연마해야 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은 정직하게 생활하며 능력을 갖추었다는 신뢰를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습니다. 사회가 필요로 한다면 하기 싫은 일도 묵묵히 수행할 수 있는 인내심과 공적 마인드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는 사회공동체를 위한 것뿐 아니라 개인의 성공을 위해서도 요구되는 인성입니다. Steve Jobs가 스탠포드대학 졸업생들에게 “stay foolish”라고 했듯이, 우수한 자질을 갖춘 사람이 남과의 작은 경쟁에서 이기려고 힘을 소진하지 말고, 작은 일을 조금 양보하는 등 우직하게 보이더라도 큰 목표에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가슴에 새겨두길 바랍니다.


네 바쁘신 가운데에서도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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