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장의 사진

[제186호] 경성고등상업학교 제5회 졸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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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1925년 3월 경성고등학교(경성고상) 제5기생들의 졸업사진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경성고상은 서울대학교 상과 대학의 전신, 서울상대는 현재의서울대학교 경영대학과 경제학부의 전신이다. 제5기생들의 졸업이 제1기나 기타 다른 기의 졸업보다 특별한 것은 한국인으로서는 첫 졸업이라는 점이다. 경성고상의 제1기부터 제4기까지는 일본인만 입학했고, 한국인은 제5기부터 입학을 했기 때문이다.


경성고상의 기원은 구한말인 1900년일본 동경에 설립된 타이완(臺灣)협회학교에서 비롯된다. 타이완협회는 일본이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타이완을 식민지로 통치하게 되자 타이완의 사정을 연구하기 위해 만든 단체였다. 협회는 그 후 타이완에 나가 식민사업에 종사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타이완협회학교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1904년에 전문학교로 승격했고, 1907년에 동양협회전문학교(東洋協會專門學校)로 개칭했다. 타이완뿐 아니라 한국과 만주에서의 식민사업을 포괄하기 위해서였으며, 개칭과 동시에 동양협회전문학교 경성분교를 서울 필동에 설치했다.


한일합방 후인 1918년 4월 동양협회전문학교 본교를 척식대학(拓殖大學)으로 개편하면서 위 경성분교를 본교에서 분리, 독립시켜 그 명칭을 동양협회경성전문학교로 변경하였다. 이 학 교 는1920년 5월 조선총독부 방침에 따라 재 단 법 인 사립·경성고등상업학교로 개편되었고, 1922년 3월에는 총독부에서 인수하여 관립·경성고등상업학교로 개편하였다.


이 같은 역사를 가진 경성고상은 개교 일을 1918년 4월즉, 동양협회전문학교 경성분교가 본교로부터 독립하여 동양협회경성전문학교로 개편된 날로 하였다. 이 학교는 3년제로서 1921년 3월에 제1회 졸업생을 배출했고, 1922년 3월, 1923년 3월, 1924년 3월에 각각 제2회, 제3회, 제4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들은 모두 일본인 학생들이었다. 학교의 설립목적이 식민사업에 필요한 인재 양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관립·경성고등상업학교로 개편된1922년부터 한국인 학생들의 입학이 허용되었다. 1919년 3.1운동에 충격을 받은 일제가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시행한 조치였다.


1922년 4월에는 모두 70명이 입학했는데 그 중 5명이 한국인이었다. 이들은 3년 후인 1925년 3월 제5회로 첫 졸업을 하였다. 위 사진은 한국인 학생이 포함된 제5회 졸업생들의 사진이다. 이들 졸업생 중에 한국인으로는 고흥면, 배기열, 이세기, 이정재, 정병호 등 동문이 있다. 모두작고한지 오래다. 고흥면 동문은 일제 때 조선토목주식회사에 근무했고, 해방 후에는 미국대사관공보원 영화제작소에 근무했다. 배기열 동문은 일제 때 함종금융조합(평안남도)에, 해방 후에는 한국미곡창고㈜ 상무 취체역으로 근무했다. 이세기 동문은 일제 때 원주임산㈜에, 해방 후에는 한국저축은행 서무부장으로 근무했다.


이정재 동문은 일제 때 영보합명회사 사장을 지냈고, 해방 후 대한상공회의소설립에 큰 역할을 하여 감사를 지냈다. 1950년대 이후 한국실업공사 사장을 역임했으며, 서울상대동창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을 지냈다. 정병호 동문은 해방 전 조선은행 조사실에 근무했다.


제5기 입학생 중 한국인 학생은 5명으로 전체인원 70명 중 약 7%에 불과했으나 다음 해부터는 10%를 넘었고, 1930년대에는 20%를, 1940년대에는 30%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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