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호] 김효근(경제 79)의 아트팝 가곡, 뮤지컬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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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곡이 뮤지컬과 만났다. 지난 9월 2~4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초연한 <첫사랑>은 작곡가 김효근의 가곡들을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이다. 가곡으로 뮤지컬을 엮어 내는 것은 새로운 시도다. 그의 가곡은 기존의 전통적인 가곡에 대중성을 가미한 가곡들이어서 뮤지컬에 담을 수 있었다.
작곡가 김효근은 뜻밖에도 음악과 출신이 아닌 우리 경제학과 동문이다. 그는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전략경영’을, 미국 피츠버그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정보학’을 전공하여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이화여대 교수로 들어가 경영대학장을 역임했다.
그는 경제학과 재학 중에 음악대학에서 화성학과 대위법 수업을 함께 듣고는 1981년 제1회 MBC 대학가곡제에 참가, 가곡 <눈>으로 대상을 받았다. 가곡제에 참가한 학생 95명 중 유일한 비작곡과 학생이 대상을 받은 것이다. 이후 그는 경영학 연구와 함께 가곡 작곡을 계속했다.
김효근 교수의 가곡은 기존의 가곡과 달리 ‘아트팝(Art Pop)’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곡이다. 우리 가곡은 지난 수십년 동안 전통적인 악곡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어렵고 지루했지만 여기에 오늘날 대중들의 음악적 선호를 반영한 것이다. 김 교수는 이렇게 “가곡의 예술성에 대중성을 더했다”는 의미의 아트팝을 창시했고, 그 후 10여년 간 한국 가곡계의 흐름을 바꾼 ‘새로운 바람’이 되었다.
뮤지컬 <첫사랑>
뮤지컬 <첫사랑>은 초기 치매를 앓고 있는 50대 사진작가 태경이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져 20대 젊은 시절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그 과거에서 대학학보사 기자로 사진 찍기에 열중하던 태경 자신의 젊은 모습과, 이탈리아 국제음악제에서 무대에 서기를 갈망했던 첫사랑 선우가 보인다. 그 때 젊은 태우가 선우에게 반했던 대학가곡제가 재연되면서 가곡 <눈>을 부른다.
가곡 <눈>은 이렇게 시작한다.
“조그만 산길에 흰 눈이 곱게 쌓이면/ 내 작은 발자욱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 내 작은 마음이 하얗게 물들 때까지/ 새하얀 산길을 헤매이고 싶소”… 바로 김효근이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곡이다.
뮤지컬에는 <눈> 외에도 김효근의 대표작 <첫사랑>∙<내 영혼 바람되어>∙<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등 13곡의 가곡이 흐른다. 그 중 <첫 사랑>은 1985년 김효근이 아내에게 프로포즈하기 위해 만든 곡으로, 이렇게 시작한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이여 설레는 내 마음에 빛을 담았네/ 말 못해 애타는 시간이여 나 홀로 저민다/ 그 눈길 마주친 순간이여/ 내 마음 알릴세라 눈빛 돌리네/ 그대와 함께한 시간이여 나 홀로 벅차다”…
<내 영혼 바람되어>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시 <A Thousand Winds>를 김 교수가 번안하고 음악을 넣은 것이다. 이 곡은 2008년 작곡되어 널리 불려졌고,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더 유명해졌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러시아의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 시를 번역하여 곡을 붙인 것이다. 이 곡은 2015년 작곡되어 최근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격려의 노래가 되었다.
이번 공연은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연극 <보도지침> <초선의원> 등으로 호흡을 맞춰온 오세혁 연출과 이진욱 음악감독이 함께 작업했다. 순수예술인 한국 가곡을 가장 대중적인 공연예술 뮤지컬에 접목한 것은 역사적인 도전이었다. 스타 마케팅도, 수십억원대의 막대한 제작비도 화려한 무대 장치도 없는 담백한 스타일의 뮤지컬이었지만 사흘간의 짧은 공연에도 관객 반응은 뜨거웠다.
이 뮤지컬에 반응한 것은 주로 중장년층 관객들이었다. 예매자 분포를 보면 50대가 26.3%, 60대 이상이 21.2%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 30대 19.1%, 40대 18.5%, 20대 13.4% 순이었다. 뮤지컬 시장의 ‘큰손’이라 불리는 주 관객층이 20~30대라는 점에 비춰보면 눈에 띄는 차이다.
김효근의 작품 활동
그의 작품들은 여러 성악가들이 불러 아트팝 앨범으로 제작되었다. 1집 <내 영혼 바람되어>(2010)를 시작으로 <사랑해>(2012), <모든 것을 주님께 맡깁니다>(2013), <첫사랑>∙<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사랑의 꿈>∙<천년의 약속>∙<사랑한다는 말은>(2014-17) 등이 잇달아 출시되었다. 이와 함께 그는 소프라노 김순영, 최정원, 정혜욱, 한경미, 테너 김세일, 김승직, 박은태 등 여러 성악가들에게 곡을 맡기고 앨범 프로듀싱에도 참여했다.
또 그의 작품만을 공연하는 아트팝 콘서트도 여러 차례 열렸다. 2008년 9월 양준모와 함께 한 <Showcase 콘서트>, 송기창과 함께 한 <사랑해>(2013, 라루체 명동), <벨라 소렐라와 함께하는 콘서트>(2019, 세종문화회관), 2020년 8월 <김효근의 아트팝 콘서트>(2020, 대전예술의전당),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2021, 하남문화예술회관, 부산 금정문화회관) 등 10여 차례나 된다.
이어서 지난 9월 14일에는 K-아트팝 가곡의 밤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공연했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이 콘서트에는 안두현이 지휘하는 SAM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문재원이 연주하고, 김순영∙최정원(소프라노), 성악가 존노∙윤서준(테너), 송기창∙이응광(바리톤)이 노래했다. 이들은 타이틀 곡인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비롯하여 <첫사랑>∙<기도>∙<푸르른 날>∙<내 영혼 바람 되어>∙<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등을 연주하여 가곡 애호가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그의 가곡들은 2021년 11월에 아트팝 오페라로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뮤지컬 <첫사랑>보다 약 10개월 전이다.
제목은 <안드로메다>. 우주에서 가장 과학문명이 발달한 안드로메다 행성 왕국에서 음악이 사라지면서 거대 혹성과의 충돌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이 위기를 진정한 음악과 사랑으로 벗어난다는 줄거리의 판타지 SF 분위기의 오페라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구촌이 고난을 겪고 있을 때 작곡가는 “음악이 없어진 과학 문명의 한계와 음악의 근원은 사랑이고, 온 인류가 음악을 통해 하나 된 마음으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지난 8월에 다시 공연되었다.
새로운 사업 "아트링커"
김효근 교수의 활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경영정보학 박사인 그는 예술성 있는 음악에 일반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아트링커’ (artslinker.com)라는 인터넷 플랫폼을 개발했다. ‘아트링커’란 예술 작가와 예술 애호가를 연결시켜 준다는 뜻.
이 플랫폼은 음악은 물론, 미술, 공연, 레슨, 전시, 공간대여, 예술서적 등 모든 예술 상품을 거래할 수 있는 온라인 시장으로 지난해 3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김 교수는 이 플랫폼에 특히 국내 최고의 예술공간인 서울 예술의전당과 성남아트센터, 마포아트센터, 하남문화예술회관, 대구오페라하우스 등의 음악회와 전시공연 등을 입점시키는 데 성공했다.
김효근 교수는 ‘아트링커’를 ‘예술계의 아마존닷컴’으로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온라인으로 자신의 상품을 올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술분야는 그래도 낫지만 음악 연주와 공연 분야는 작가 자신이 무엇을 판매할 수 있는지 그 상품성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온라인 설명을 통해 가르쳐주기도 하고 세미나에서 샘플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홍보를 펼치고 있다.
김 교수가 그 동안 가곡의 대중화에 주력해 왔다면 이제는 거기에 더하여 예술 시장의 대중화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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