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8호] 난수서예(亂數書藝) 모델 개발한 김성인(경제 66)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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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 비문 서예작품과 김성인 교수




고려대학교 과학도서관 로비에는 광개토대왕 비문의 대형 서예작품이 걸려 있다. 로비 천정에까지 닿는다. 경제학과 66학번, 고려대 공과대학 김성인 교수가 비문 1,755자전문(全文)을 서예작품으로 구현하여 기증한 것이다. 광개토대왕비는 만주 대륙에 위엄을 떨친 대왕의 업적에 걸맞게 높이 6.39 미터 동남아 최대의 웅대함을 보인다. 


김성인 교수는 경제학과 출신이 공과대학 교수가 된 데다가 공과대학 교수가 서예를 한다는 점이 매우 이채롭다. 더욱 이채로운 것은 비석 원문의 예서체를 그대로 쓰지 않고 각 글자에서 획의 크기, 농담(濃淡), 굵기, 기울기, 위치 등 서예의 미학요소들을 변화시켜 작품을 구성했고, 그 변화에 난수(亂數)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서예가에 따라서는 글자를 모두 일정한 자형으로 써 내려가지 않고 미학요소들을 마음껏 변화시키는 데에서 예술성을 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그림 1>. 김 교수의 작품은 이러한 변화를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비석의 제1면은 원문의 예서체를 그대로 따랐지만<그림 2.1>, 제2면은 글자 단위로 크기에 변화를 주었고<그림 2.2>, 제3면은 여기에 각 글자의 획 단위로 굵기와 농담의 변화를 더했으며<그림 2.3>, 제4면에는 다시 획 단위로 기울기의 변화를 추가하였다<그림 2.4>.



난수의 성질을 이용한 예술성의 추구


김 교수는 미학요소들의 변화와 구성에 난수를 활용했다고 한다. 서예계에서 널리 일컬어지는 말이 있다. “서(書)는 자연에서 비롯되었다. 서예의 최고 경지는 고도의 법을 숙련시켜 법 없는 가운데 법이 있어야만 지극한 법이 되며, 극도로 고심하면서도 고심의 흔적이 없어야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 요약하면 “의식 중의 무의식”에서 “무질서 속의 질서”를 작품에 구현한다는 말이다. 


이 같은 “의식 중의 무의식” “무질서 속의 질서” 구현에 김 교수는 난수의 성질을 이용한다는 발상이다. 난수표에는 “0”에서 “9“까지 열 개의 숫자가 뒤섞여 있는데 누구도 어떤 숫자 다음에 무슨 숫자가 나올지 예측하지 못한다(무질서). 그러나 많은 수의 난수들에서 각 숫자가 나오는 빈도는 1/10 내외가 된다(질서). 난수가 지시하는 대로 쓰면, 작품에서 미학요소들의 변화와 구성은 난수의 성질을 내려 받아 무질서 속의 질서를 갖게 되고, 최고 경지의 서예작품이 탄생된다는 이론이다. 


김 교수의 “난수 서예 모델”은 최고 경지의 서예가가 보이는 변화무쌍함을 정량화하여 난수에 따라 구현하려는 체계적 방법이다. 난수 모델에 의한 작업은 “기계적”인 작업이지만 종국에는 명필의 “무아지경”과 일맥상통하고, 명필의 “변화무쌍함” 속에서 “절제와 균형”을 이룬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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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계의 반응


어느 분야에서나 새로운 방법론은 일단 저항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이유이다. 그가 지난 6월 한국서예학회의 학술발표에서 난수 서예에 관한 이론을 발표했을 때 많은 거부와 저항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 교수의 난수 서예 모델의 연구 결과는 한문의 경우 “월간서예(미술문화원, 2020년 11월호)”에, 한글의 경우 “서예학연구(한국서예학회, 2021년 38호)”에 게재되었다. 이 때 논문을 심사한 세 심사위원들의 논평은 의외로 고무적이다. 한 심사위원은 “서예의 기성 작가와 초보자에게 창작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신선한 연구,” 또 한 심사위원은 “서체의 예술성까지 인지, 확장하려는 섬세함을 갖춘 컴퓨터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획기적인 논문,” 또 다른 심사위원은 “낯설고 충격적이기는 하나, 다양한 변화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인공지능 시대에서 서예를 정량적 방법으로 시도한 논문”이라고 평가했다. 평생 논문을 수없이 투고한 김 교수도 이런 호평을 받기는 처음이란다. 


또한 이 작품을 기증받은 고려대 정진택 총장의 “수학과 서예, 과학과 예술이 만나 어우러진 난수 서예 모델을 서예 역사상 최초로 정립한 김성인 명예교수의 광개토대왕비 서예작품이 과학의 전당 과학도서관에 걸려 더욱 뜻이 깊고, 잘 어울린다”라는 인사 말씀도 있었다. 

김 교수는 앞으로 난수 모델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완성되어 “인공지능 서예”로 발전할 것을 기대한다. 난수 서예 모델과 같은 정량적 접근 방법이 인공지능적 접근 방법과 서예 고유의 정성적 방법과 서로 보완하여 시너지 효과를 가질 때 서예계의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해서다. 이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있다면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인공지능 바둑이 인간 프로기사들을 제압한지는 오래이다. 바둑 역사에 없는 기이한(?) 수를 놓는 인공지능을 연구하지 않는 기사는 이를 연구하는 기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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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가 지나온 길


김성인 교수는 경제학 외에 서울대 공대에서 응용수학 학사학위를 하나 더 받았다. 이어 KAIST에서 산업공학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후 “인공지능 및 응용통계 연구실”을 개설하여 지도교수를 역임하고, 교무처장을 지냈으며, 2011년 정년 퇴임하여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대외적으로는 대한산업공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16년부터 늦깎이로 서예에 심취해 왔는데 서예 경력을 물으면 50년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남들이 10년간 쌓는 경험을 1년만에 이루겠다’는 각오로 치열하게 달려왔다는 것이다. 그는 서예에 입문한지 고작 2년만인 2018년과 2019년 두 번에 걸쳐, 같이 서예를 시작한 부인 김명희 여사와 함께 “부부 습작전”을 열었고, 코로나 펜데믹으로 연기되었던 제3회 전시회는 금년 말에 “난수 서예전”으로 가질 예정이다. 그 동안에는 일반적 서법에 의한 작품을 전시했지만 이번에는 난수 서예 모델에 의한 전서체의 산씨반, 예서체의 광개토대왕비, 훈민정음체의 용비어천가 등이 추가될 예정이다. 


김 교수는 비과학적이고 정성적으로 보이는 분야를 정량적∙계량적으로 접근하여 분석하는데 관심이 많다. 그는 과거 교통사고 범죄에 대한 형량을 예측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해 웹에 공개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미술치료사들의 지식과 경험을 “전문가 시스템”으로 개발하고, 그림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미술치료에 활용하는 앱도 선보였다. 그의 형량 예측 시스템에 관한 논문은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널리 인용되고 있고, 미술치료의 국제 학술계에서는 그를 “가장 논문을 많이 낸 저자”로 언급하기도 한다. 

과연 수천년 서예 역사상 최초의 난수 서예 모델은 5년 내에 빛을 볼 것인가? 김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해서도 정량적으로 대답한다. “그럴 확률이 0.65”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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