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호] 증거기반정책을 위한 국가 통계데이터 거버넌스 개편 / 류근관 (경제 79, 경제학부 교수, 전 통계청장)
작성자 정보
- 편집부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632 조회
본문
증거에 기반을 둔 정책집행과 실용주의에 입각한 국정운영을 하려면 국가 통계데이터의 원활한 활용이 필수적이다. 연금개혁을 하려면 포괄적으로 연금실태가 파악되어야 하고, 실효성 있는 가계대책을 마련하려면 가계부채의 실상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한데 국가 통계데이터의 연계 이용이 쉽지 않다. 조직이 문제다. 통계청은 과거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기획재정부 외청으로 있다. 정부 직제상 청(廳)은 소속된 부의 고유 업무를 맡아 처리한다.
통계청이 직접 생산하는 66종의 국가통계 가운데 경제통계는 약 20종으로 삼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러 기관이 생산하는 전체 국가통계 1,276종 중에서도 경제통계는 그 일부분일 뿐이다. 경제개발시대에는 경제가 전부였고 통계도 경제통계가 전부였으나 지금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가통계는 이른바 분산화된 통계체계를 따른다. 통계데이터가 여러 부처에 나뉘어져 있다보니 기획재정부 산하 통계청이 여러 부처에 분산된 통계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연계 처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자료의 연계 활용을 위한 거버넌스 확립이 매우 중요하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플랫폼을 구축해 국정운영을 위한 의사결정에 데이터∙과학화 기반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새 정부에서 구축하려는 디지털플랫폼은 정확한 국가 통계데이터를 제외하고는 말할 수 없다. 연금개혁, 인구절벽, 고용∙물가 등 앞으로 부닥치게 될 경제∙사회문제는 고차방정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문제를 풀기에 개별 부처만으로는 힘에 부친다. 부처 간 연계되고 상호 검증된 통계데이터로 접근해야 보다 나은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심각한 고령화∙저출산에 직면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고령화 속도와 노인 빈곤율은 1위고, 출산율은 아래로부터 1위다. 연금개혁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정작 개인 및 가구별 공적∙사적연금 수급상황을 한눈에 보여주는 포괄적 연금통계는 정부 어느 부처에도 없다. 통계청은 2021년 벽두부터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각종 연금 데이터와 통계청의 통계등록부를 연결해 연금실태 전모를 파악하는 포괄적 연금통계 개발을 추진해오고 있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퇴직연금은 고용노동부, 개인연금은 국세청, 주택연금은 금융위원회∙주택금융공사 등으로 담당부처가 제각각이다. 이들 자료의 연계를 합의하는 데만 1년을 훌쩍 넘겼다. 연금개혁을 더는 미룰 수도 없는 상황에서 부처 간 데이터 칸막이로 골든타임을 놓칠까 걱정스럽다.
이른바 데이터 3법 개정 이후 통계데이터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범 부처 자료를 활용해야 만들 수 있는 사회통합지표, 가계부채,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탄소중립(Net Zero) 등도 데이터 연계 활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부처 간 데이터 칸막이는 증거기반정책을 뒷받침할 새로운 국가 통계 개발의 속도를 현저히 떨어뜨린다. 급변하는 환경에 대한 대처가 시급한데 의미 있는 통계생산은 턱없이 느리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 데이터를 그 성격에 따라 민간데이터, 공공데이터, 통계데이터로 나누어 살펴보자. 민간데이터는 금융위원회와 과학기술부가 중심이된 거버넌스 하에서 금융∙바이오 분야 마이데이터(My Data) 사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공공데이터는 그 개방지수가 OECD 회원국 중 1위에 오를 정도로 행정안전부에서 비교적 잘 관리하고 있다. 큰 문제없이 작동되는 모습이다.
새로운 국가 통계데이터 / 거버넌스의 필요성
하지만 국세나 4대보험 등과 같은 비공개 공공데이터와 각종 국가 통계데이터는 부처별 데이터를 포괄하는 사령탑이 없다. 정부의 국정 운영에 있어 증거기반정책이 중요한데 국가 통계데이터의 거버넌스는 부실하다. 데이터는 쌓이고 연계될수록 가치가 급증하는 이른바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가 작동하는데 이러한 잠재적 가치가 실현될 기반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 분산형 국가통계제도 하에서 부처 간 데이터 연계 활용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오히려 칸막이로 가로 막힌 부처별 자료에 근거해 “그간 우리 부처가 정책을 잘 집행한 것으로 측정되었으니 앞으로 예산과 조직을 늘려 달라”는 식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실용주의에 입각한 증거기반 정책의 구현은 국가 통계데이터 거버넌스의 획기적 전환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 단초는 2021년부터 통계청이 허브-스포크(hub and spokes)로 개념화한 모형에서 찾아본다. 허브-스포크 모형은 통계청의 통계등록부(hub)와 각 기관이 보유한 데이터(spokes)를 동형암호 등 가장 최신의 정보기술로 연결하고, 암호화한 상태에서 안전하게 분석하는 틀이다. [그림 참조]
각 기관의 데이터를 한 곳에 모을 필요도 없다. 데이터 보유기관은 보유 자료를 자신의 데이터 센터 밖으로 내주지 않고 타기관과 연결할 수 있도록 협조만 해주면 된다. 자료 연계와 자료 분석을 암호화한 상태에서 하고, 그 암호화된 분석 결과마저도 안전하게 푸는 시스템이다 보니 극단적으로 적과의 동침마저도 허용한다. 암호화된 결과를 푸는 이치는 은행의 개인금고를 열 때 은행이든 개인이든 혼자서는 열 수 없고, 둘이 합심해야만 열 수 있는 것과 같다. 한 기관이 갖고 있는 비밀키로 금고의 반을 열고, 이어 다른 기관의 비밀키로 나머지 반을 마저 열어야 금고가 완전히 열리게 된다.
이러한 원리는 그 동안 개인정보보호 문제로 자료제공을 거부하던 개별 부처의 명분이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통계등록부(statistical registers)와 개인정보보호(privacy protection) 두 가지를 핵심 축으로, 관계 부처 간 자료가 필요할 때만 안전하게 믹스앤매치(mix& match) 방식으로 연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허브-스포크 모형은 국정 운영에 꼭 필요한 기관 간 자료 연계및 부처 간 협업을 지원하게 된다.
필자가 통계청장으로 재임할 때 국제학회와 국제기구에 우리나라 통계청이 개념화한 허브-스포크 모형을 소개했다. 이 모형은 국가 데이터 플랫폼으로 안성맞춤이다. 그 구체적 적용사례로 통계청의 기업통계등록부와 한 지방자치단체의 소상공인 자료 등 두 기관의 통계데이터를 최신 동형암호 기술로 연계 분석한 성공사례도 발표하였다. 이를 두고 수리통계혁신연구소(iMSi) 워크숍에 참석한 세계 최고의 암호학자들은 최신 정보보호 기법의 선구적인 활용사례라고 평가했다. UN과 OECD 통계위원회 의장단 회의에서도 참가자들은 새로운 국가통계 패러다임이라고 호평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평가를 기반으로 현재 우리나라 통계청은 국가 통계데이터 거버넌스의 세계표준을 선도할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증거가 중요하듯, 정부에게는 국정운영의 흔적인 통계데이터가 중요하다. 총리실은 정책에 대한 총괄∙조정의 공식적인 권한(formal authority)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예산집행과 성과측정의 실질적인 권한(real authority)은 통계데이터를 가진 각 부처에 있다. 증거기반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해야 할 데이터 시대에 부처 간 데이터 칸막이는 효율적인 국정 운영을 방해하고 총리실의 실질적인 정책총괄 및 국무조정 기능을 훼손한다.
통계청은 부처 간 자료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허브-스포크 모형을 개발 중이며 이미 성공적인 응용 사례까지 만들어 냈다. 이는 개인정보보호와 데이터 연계∙활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국가 데이터 플랫폼으로 제격이다. 국가 통계데이터에 관한 한 경험과 인력 면에서 앞선 통계청이 허브 역할을수행하게 하자. 각 부처에 산재한 통계데이터를 연계, 공유, 분석하게 하자.
현재 기획재정부 외청에 위치한 통계청에게 제자리를 찾아주자. 총리실이 국무총괄∙조정에 있어 실질적 권한을 갖도록 국가 통계데이터로 뒷받침하자. 각부처의 증거기반정책을 보다 객관적으로 지원하게 하자. 이를 위해서는 기획재정부 소속의 통계청를 국무총리 소속의 통계데이터처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1994년 정부통신부가 된 체신부의 사례처럼 말이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 류근관 교수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경제통계학∙계량경제학을 가르쳤다.
2020년 12월 통계청장에 취임했다가 지난 5월 복귀했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