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호] 월급보다 스톡옵션 택했던 김정태(상학 66학번) 전 국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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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8월 주택은행장으로 취임하면서 월급 대신에 스톡옵션을 받기로 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고 김정태 동문. 

그는 후에 국민은행장이 되면서도 스톡옵션을 택했고, 그렇게 해서 받은 주식을 처분하여 절반은 고아원과 노인복지시설에 기부하고, 나머지 자금의 일부로는 경기도 일산에 농장을 마련했다. 국민은행에서 은퇴한 후 그는 그 농장에서 농사를 짓다가 2014년 1월 타계했다. 지난 1월로 꼭 8주기가 되었다.

고 김정태 동문은 그 농장의 이름을 <다와농장>이라고 지었다. 누구든지 “다와서 일해도 좋은 농장”이라는 뜻이었다. 지금 그 농장은 부인 최경진 여사가 이어 받아 농사를 짓고 있는데 부인 역시 “누구든지 다 와서”일하게 하고 수확은 모두에게 나누어 준다. 고인의 “다와”정신까지 이어 받고 있는 것이다.


김 동문은 전남 광산 출신으로 광주일고, 서울대 상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동원증권 부사장, 동원창업투자 대표, 동원증권 사장을 지냈다. 동원증권 사장으로 있던 1997년에 외환위기가 일어났다. 다른 증권사들은 자금을 차입하여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함으로써 수익을 올릴 때 김 사장은 위기를 미리 짐작하고 주식채권을 팔아 대출을 갚았다. 마침내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주가와 채권 값이 폭락했고, 다른 증권사들은 모두 큰 폭의 적자를 냈으나 동원증권은 이익을 내고 주주들에게 배당도 했다. 이 일로 그는 1998년 6월 비즈니스위크가 뽑은 `아시아 금융위기를 극복할 50인의 스타'에 선정될 만큼 주목을 받았다. 


그 직후인 1998년 8월 그는 주택은행에 최연소(51세) 행장으로 취임했다. 이때 그는 ‘주주가치 극대화’를 모토로 한다며 ‘월급 1원, 주식(스톡옵션) 30만 주’를 요구했다. 우리나라 스톡옵션은 1997년 4월에 법제화된, 당시로서는 매우 생소한 제도였다. 김 행장은 주택은행 주가가 은행권 최고를 유지할 경우 10만 주를 더 받도록 되어 있어 퇴직할 때 모두 40만 주를 받았다. 당시 보신주의가 만연한은행권에서 ‘주주가치 극대화’모토를 내건 것은 ‘혁명’에 가까웠다. 취임 두 달 만에 그는 “수천억 원의 적자가 나도 좋으니 부실자산을 모두 털어내라”고 지시했다. 그 지시에 따라 주택은행은 대우그룹이 망하기 전 갖은 압력과 청탁을 물리치고 1조원 이상의 대우 여신을 회수했다. 그런가 하면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여 국내외 증시가 모두 폭락했을 때 오히려 우량주를 싼 값에 사들여 대박을 냈다. 이 같은 그의 행보가 주택은행 수익에 큰 공헌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 후 2001년 11월에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이 합병할 때 당시 주택은행장과 국민은행장 중 누가 합병은행장이 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졌지만 결국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했던 김정태 행장이 맡게 되었다. 국민은행장에 취임할 때에도 그는 월급 1원에 스톡옵션 50만주를 조건으로 하였다.


2003년 신용불량자들이 급격이 증가하면서 그들에게 카드를 발급해 준 신용카드사들이 대거 부실화되었다. 그 중 규모가 가장 컸던 LG카드사가 파산 위기에처하게 되자 정부는 채권은행들에 대해 대출금 출자전환을 요청했다. 이 때 국민은행의 김 행장은 단연히 이를 거절했다. LG카드가 파산할 리스크를 짊어져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 같은 방식의 경영을 계속한 결과 출범 당시 4만원 선이던 국민은행 주가는 그후 9만원 가까이 치솟았다.

은행장 취임시 그가 스톡옵션으로 받았던 주택은행 주식은 2002년에, 국민은행 주식은 2006년에 모두 처분하여 각각 100억원대의 차익을 남겼다.


그가 남기고 간 <다와 농장>에서는 그의 부인 최경진 여사가 농사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 농장에 오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그의 고등학교(창덕여고), 대학교이화여대) 동창들과 김 행장의 대학동창(서울상대) 부인들과 동네 사람들 등 다양하다. 이들 <다와 가족>은 50명 정도 되는데 다와농장에서 같이 일하고 거기서 수확하는 야채나 과일이나 모두 나누어 간다. <다와 가족>들은 목요일에는 농사를 짓지만 다른 날에는 같이 등산도 하고, 일산호수공원 산책도 한다. 때때로 야외 나들이도 하고, 영화나 오페라를 보러 가기도 한다. 토요일 오전에는 문화강좌를 듣고, 오후에는 요즘 같으면 하모니카 연습을 한다. 지난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때는 조촐한 음악회를 열어서 그 동안 연습한 하모니카 연주도 하고 외부 인사를 초청하여 성악과 하모니카, 기타, 아코디언 연주도 감상했다. 그날 따라 유난히 날씨가 추웠는데도 <다와 가족>의 마음은 오히려 훈훈했다.


고 김정태 동문의 묘소는 제1농장 소나무 밭에 있다. 김 동문은 8년전에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다와> 정신은 아직 우리 곁에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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