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호] 69학번 상산회 300회 산행기념 한라산 등반기 / 이종기(경영 69, 본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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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상대 6 9학번들의 등산모임 상산회(商山會). 상산회의 300회에 걸친 등반의 역사는 동기회 역사의 가장 역동적인 부분이 될 것이다. 천하명산을 주유하며, 걷고 떠들고 마셔댄 기록이 그 곳에 있으며, 또한 세월에 따라 인생의 변모하는 모습들이 고스란히 시차를 두고 영상 속에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상산회 4반세기의 역사, 우리가 40대 후반에서 70대초반에 이르는 인생의 황금기에 찾아나선 산들의 추억은 우리 삶의 중요한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다. 지난 5월에 새로운 추억을 추가하려는 기획이 추진되었고, 69학번 산꾼들은 우루루 그 기획에 참여하였으니 그 면면은 아래와 같다.


강병서, 곽영균, 김성진, 김승기, 김인상, 김재윤, 김형철, 남영우, 엄형섭, 유병인, 이종기, 이종원, 정찬인, 추호석 (이상 영실팀 14명), 강신찬, 권중배, 김상희, 김한주, 김호경, 남상덕, 방영민, 배진한, 심달섭, 윤신한, 윤용국, 이계혁, 이대용, 이성열, 이정우, 이제용, 이종구, 장인주, 정태성, 최해관, 한택수 (이상 성판악팀 21명, 합계 35명)


5월 16일, 61년 전 역사의 기록이 있던 날, 서울상대 69학번의 제주도 진입이 시작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제주도는 푸른 바다 위에 뜬 파라다이스의 모습 그대로였다. 가슴이 뛴다. 저 중심에 솟은 한라의 정상에 도전하리라. 35명의 점령군들이 개별적으로 속속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모의된 장소에 집합할 때에 제주도의 5월은 빛나고 있었다. 바닷바람은 서늘했고 공항을 메운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였다.


상산회 300회 등반 기념 한라산 등정계획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지금부터 12년전 이 땅의 발원지인 백두산을 등정할 때는 20여명이었던 대원이 이제 35명으로 늘었으니 60대 초반의 세월이 70대 중반으로 변하는 사이에 체력과 도전정신이 강화된 것인가, 아니면 지도부의 열정적인 흥행몰이가 대박을 거둔 것인가?


말리지 마시라, 이 자들이 바로 못 말리는 서울상대 69학번의 산꾼들일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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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숙소로 떠나면서부터 한라산 등정계획은 한치의 착오도 없이 가동되기 시작하였다. 숙소에 짐을 풀고 첫날은 송악산 둘레길을 순회하며 몸을 푸는 프로그램이다. 제주의 올레길들은 모두 아름답지만 바다 건너 산방산 뒤로 펼쳐진 해변도시를 관망하며 걷는 길가에는 영롱한 풀꽃 들이 싱그러웠다. 바닷바람은 전신을 어루만지고 5월의 태양은 빛나는데 눈앞의 짓푸른 바다와 섬들이 평화로 웠다.


좋다, 대한민국의 평화와 아름다운 강산, 선진 문명... 아, 우리 삶의 이맘때 쯤에 대한민국은 태평성대였으니...


저녁 식사에는 최상의 해물탕이 나왔다. 꿈틀대는 왕문어를 전복, 홍합, 새우들이 보글거리는 전골냄비에 밀어 넣으니 문어가 몸부림쳤다. 술꾼들은 제주 한라산 소주에 21도가 있다는 걸 알아내고는 바로 이 맛이 소주맛이라고 환호한다. 내일의 거사를 위해 오늘은 자중하라는 총장님(이성열 사무총장)의 호소가 무색하다.


5월 17일, 마침내 예비하고 기다려온 그날의 아침이 밝았다. 팀은 성판악 코스와 영실 코스 둘로 나뉘었다. 성판악 코스는 백록담까지, 영실 코스는 백록담 남벽까지만 갔다 오는 것이지만 성판악이나 영실이나 긴장하고 흥분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4반세기 국내외로 고산 준령을 헤맨것이 한 두번이 아니건만 이번처럼

대비산행을 수 차례 실시하고 긴장감을 조성하고 참여자들을 겁준 사례가 없었다. 우리 생애 최후의 도전이라는 둥...


필자는 영실 코스를 택했다. 영실팀 조장 정찬인은 단호했다. 출발 전 선두지휘에 김재윤, 중간지휘에 김성진, 후미 안전책에 이종원을 임명하고, 부대의 이동속도와 휴식시간을 조절했다. 중도에 김인상이 힘을 주체하지 못해 치고 나가려는 것을 두차례나 레드카드를 발동하여 진정시켰다. 레드카드 받은 자는 구시렁구

시렁...


또한 조장은, 이번 모임에서 공연히 성판악팀이 영실팀보다 우월적 지위를 뽐내려는 경향을 단호히 부인했다. 다리 힘은 모르겠으나 영실팀이 인물이 우월하다는 것이다. ㅋㅋ


그렇다. 영실은 영실대로 빛나고 성판악은 성판악대로 엄숙하다. 영실팀은 느긋함과 풍광의 감상에 집중하고 성판악팀은 고난과 인내에 도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목표가 다르면 인생행로가 다를 것이다. 백록담에서 영실로 선회했다가 마지막 순간에 백록담으로 되돌아간 한택수의 고뇌를 보라.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기로가 아니던가?


매표소 주차장에서 영실 휴계소(진입로)까지의 오르막길은 굽이굽이 돌고 완만하여 몸의 세포들을 일깨우는데 적합했다. 영실 진입로 입구에서 푯말 앞에 상산회 휘장을 걸치고 증명사진 찰칵. 영실(靈室), 신이 머무는곳.


이제 산죽(山竹)이 무성한 산속으로 진입했다. 길은 나무판으로 잘 조성하여 걷기에 편하고 경사는 순탄했다. 이 정도라면 서초동 우면산과 다를 바가 없으리라..


그러나 삶이 위로 상승할수록 순탄하지 않듯 산도 언제까지고 평탄을 용인하지는 않았다. 마침내 올 것이 오고 마는가? 계단은 서서히 각도를 세우더니 점점 날카로워져 45도, 50도, 65도.. 뒤로 넘어질 듯 가팔라졌다. 중심을 앞에 두고 작대기를 굳건히 찍으며 쉭쉭 숨소리를 쏟아냈다. 심장이 급해지긴 했으나 무리하다는

느낌은 없다. 급하면 영균이가 준비한 비상약을 투여하라는 조장의 공시가 있었다.


마침내 병풍바위에 도달하여 둘러보니 오백나한이라 부르는 기암들이 병풍처럼 늘어서고, 올라온 길을 뒤돌아 보니 일망무제. 먼 바다와 제주의 산하가 아스라 하다. 바다와 하늘 끝이 어우러져 경계가 불분명하다. 이미 고산에 이르렀는지 바람의 온도가 차갑다. 길은 여전히 오르막이나 각도가 약해지더니 마침내 천상의

산책로에 다달았다. 해발 1700m 근처에 나무 데크로 잘 설치한 산책로를 굽이굽이 돌아 나아가면 좌우에는 철쭉과 주목과 주목의 빛나는 잔해와 하얀 가지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산상의 산책로였다.


좀더 들어가니“선작지왓”이라 부르는 초원이 펼쳐지고 예쁜 전망 데크가 나오는데 거기서 보면 전면에 백록담 서벽이 솟아 있고 눈 앞에는 붉은 철쭉이 가득했다. 해발 1700m의 윗새오름에 도착하여 상호가 특별히 준비시킨 파리바게트 샌드위치를 맛보기 시작하니 이때가 한 시쯤 되었다. 매표소를 9시반에 출발했으니

거의 3시간쯤 즐기거나 용을 쓰거나 했다.


조상호는 파리를 떠나도 권력이 여전하다고 말하자 전직 해수부장관(김성진)이“나는 자리 떠난 지 15년이 넘었어도 끗발이 먹힌다”고 으스댄다. 전직의 영광이여 영원하라...


식사 후 왕복 두 시간 걸려 백록담 남벽 분기점까지 갔다 올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으나 결국 포기하고 어리목으로 내려오니 그 길은 기진맥진의 계곡이었다.


주구장창 가도가도 끝이 없는 내리막 길은 화산 암 조각들이 멋대로 박힌 험로였다. 착지를 잘 골라하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 발목이 뒤집어질 돌멩이 길은 끝날 기약이 없었다. 누군가 말했다 북한산 도봉산의 땅 길이 그립다고, 이 죽일 놈의 돌멩이 길은 다시 안 온다고... 이시련의 계곡에서 이번에 고산 산행에 처음 뛰어 들었다는 병인이의 낙심이 극에 달했다. 내 이럴 줄 몰랐다고, 다시는 한라산에 안 오른다고... 이종기에게 내기하자고 제언했던 건 순전히 철모르는 무모함이었다고... 그러나 우리는 안다. 모든 일의 신고식은 호되지만 그것이 새로운 도전의 시작인 것을. 너덜너덜하여 버스 있는 곳에 내려오니 4시가 조금 지났다. 지난날 백두산 하산 길에 겪었던 그 지독한 체험이 떠오르며 역시 산은 내려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백록담의 용사들은 어찌 되었을까? 백록담과 눈맞추고 온 자들의 자부심은 남다를 것이다. 한참 후에 내려온 철각(????却)들의 얼굴에 고통을 감내한 자들의 표정이 역력했다. 역시 내려오는 길이 시련이었다는 것이다. 훈련산행에 열심히 참여한 신진 철각 그룹들 마저 너덜너덜하게 만드는 8시간의 대장정이었다.


그러나 오르고 내리며 험로 3만 8천보를 걸은 자들의 성취감도 대단할 것이다. 해냈어, 나는 해치웠다고..저녁에 300회 기념 유쾌한 파티가 있었고, 다음날 다시 꿈처럼 아름다운 외돌개 올레길을 걸으며 이번 제주 거사의 디저트를 맛본 것은 기쁨 한 접시추가 절차였다.


세월은 재빠르게 흘러 80대 중반이 된 어느 날 우리는 회상할 것이다 “그때만 해도 참 젊었지… 서른 다섯 놈이 떼를 지어 한라산을 기어올랐으니...” 떼를 만들고 역사를 추가하게 만든 지도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상산회장 영우, 사무총장 성열, 공동추진위원장 병서와 호경. 이들이 있어 스토리가 성공적으로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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