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호] 70학번 동기들의 조순 선생님 생가 방문기 전상국 (경영 70, 전 삼성카드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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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학번 동기 15명이 지난 6월 22일 강원도 강릉에 있는 조순 선생님 생가에 다녀왔습니다. 그 날도 선생님이 위독하셔서 병원에 계시다는 말을 들었는데 다음날인 6월 23일 새벽에 결국 타계하시고 말았습니다.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선생님 영전에 이 글을 올립니다.
지난 5월말쯤 우리 동기들 카톡방에 무역과 김대식 동문으로부터 글이 올라왔다. 지난 연초에 수십년 살아왔던 과천 집을 정리하고 노후생활을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강원도 강릉에 단독주택을 장만했다고 한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잡고 주변을 산책하다가 길가에 ‘안심공원 조순생가’라는 간판이 눈에 띄기에 들어가 봤더니 그 동안 존경해오던 조순 선생님의 생가라는 것이었다. 선생님 생가에는 마침 이때 기왓장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서 기와 잇는 사진 몇 장도 함께 올라와 있었다. 이 글을 본 경제과 조기송 동문은 기와 교체작업을 하는데 옛날식 기와를 구하기가 어려워 경주에 가서 겨우 구해서 교체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조기송 동문은 바로 조 선생님의 장남이다.
그래서 우리 동기회 총무를 맡고 있는 필자는 이제 코로나 거리두기도 풀렸으니 조 선생님 생가로 야유회를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카톡방에 의견을 물었다. 우리 동기들은 지난 2020년 11월 17일 ‘입학 50주년 기념 저녁 모임’(49명 참석)’을 가진 것을 끝으로 지난 2년여 동안 한번도 모임을 갖지 못했다. 매년 해오던 송년회도 못하고, 야외모임도 못했다. 그러던 차에 조순 선생님 생가방문을 하자고 했더니 모두들 좋다고 하여 이번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경제과에서 강준석, 유인열, 임경락, 경영학과에서 김영하, 김중원, 유삼태(70 동창회장), 이관영, 이정행, 전상국, 황건호, 무역과에서는 김경호, 김대식, 민병관, 신양우, 정요진 등 이렇게 15명이 참석하고, 안내는 조기송 동문이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출발 하루 전인 21일 밤 늦게 조 동문이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는 병원 측 연락을 받고 참석을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조 동문을 제외한 나머지 동기들만 야유회를 떠났다.
조 선생님 생가는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鶴山里)에 있다. 학산리는 마을 뒷산에 학(鶴)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라 때 지어진 굴산사 터(掘山寺摅)와 당간지주, 승탑, 석불좌상 등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생가 입구에는 두 개의 큰 비석이 서 있었다. 오른쪽에는“존도행기(尊道行己)”, 왼쪽에는“봉천수명(奉天受命)”이라고 쓰여 있고, 그 글씨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도를 따라서 몸을 행하고 하늘을 받들어 명을 받노라, 2008년 7월 조순”라고 쓰여 있고, 낙관까지 찍혀 있었다. 바로 조순 선생님의 글씨였다.
이 비석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고 한다. 2002년 8월 31일 강릉 지역에 태풍 루사가 지나면서 하루 870mm라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이 폭우로 피해 본 농민들이 농경지 복구에 많은 흙이 필요하다고 하자 조 선생님이 자기 땅을 파서 쓰도록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흙을 파다 보니 직경 5m의 둥그런 반석과 높이 3.8m의 긴 바위가 나왔고, 다음날 다시 보니 신기하게도 긴 바위가 톱으로 자른 듯이 쪼개져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그 두 바위에 글을 쓰셨고, 넓은 반석은 길옆에 놓았다고 한다.
생가로 들어가보니 ㄱ자형의 아담한 한옥이었다. 크지는 않지만 배산임수의 법칙을 지켜 가운데 안채의 지붕은 높고 옆 사랑채의 지붕은 낮추어 균형미를 살
렸다. 생가에는 여러 개의 편액이 걸려 있었는데 그 중에 일중(一中) 김충현 선생이 “소천서사(小泉書舍)”라고 쓴 현판도 눈에 뜨였다.“ 소천”은 조 선생님의 아호로 “조순이 공부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 현판을 바라다 보며 우리들에게 경제학은 물론, 삶의 지혜를 말씀해 주시던 선생님을 추억했다.
조 선생님 생가를 방문하고 나서 마을회관 근처 향토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식사는 조기송 동문의 동생 조건 사장의 대접을 받았다. 조건 사장은 젊어서부터 강릉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부친인 조순 선생님이 위독하시다고 하자 미리 선산에서 작업을 하느라 우리와 만나지는 못했다. 식당에는 강원도 향토음식인 감자전, 도토리묵, 잔치국수, 돼지껍데기, 옥수수 막걸리 등이 푸짐하게 나왔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경포 해변가 “까페테라스”에서 커피 디저트를 하며 바닷가를 산책했다. 경포 해변은 대학시절에 수학여행을 왔던 곳이어서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변 산책을 마치고는 강릉의 대표적인 문화재인 선교장(船橋莊)과 오죽헌(烏竹軒)을 방문했다. 선교장은 효령대군의 11대손인 이내번(李乃蕃, 1703-1781)이 지은 한옥 고택으로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해설가의 이야기에 의하면 선교장은 원래 배에서 내려서 들르는 집이라는 뜻. 돈 없고 배고픈 옛 선비들이 여행하다가 찾아오면 따뜻하게 맞아주는 유명했던 집이라고 한다.
저녁식사는 강릉에서 유명한 어느 쌈밥집에서 먹고 거기서 가까운 김대식 동문 집을 방문했다. 김 동문이 최근에 장만했다는 단독주택의 넓은 정원에서 사모님이 정성껏 마련한 수박, 살구 등 과일을 후하게 대접 받고 서울로 올라왔다.
밤이 늦어서야 서울에 도착했는데 다음날(23일) 아침 뉴스를 들으니 새벽에 조 선생님이 별세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뉴스를듣는순간, “아, 어제선생님생가로 사랑하는 제자들을 부르셨구나”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선생님이 어느 곳으로 가시든 그저 편안히 쉬시기를 기원하며, 가족 분들의 슬픔에 심심한 애도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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