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호] 나의 버킷리스트, 은퇴 후 시작한 7가지 일 / 유노상(경제 58헉번, 전 코리아써키트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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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중반에 들어서고 있는 우리 세대는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나라의 독립과 정부수립, 참혹한 동족상잔의 6∙25 전쟁, 4∙19 의거와 5∙16 군사혁명, 민주화운동과 문민정부의 출현, 이후 국력의 신장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요동치는 세월을 온몸으로 헤쳐왔다.
내가 67세에 은퇴를 하고 이듬해 아내를 하늘나라에 보낸 후 70세가 되어 좌우를 돌아보니 5남매의 막내였던 내가 어느새 집안의 가장 웃어른이 되어 있었다. 집안에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몸부림치는 세월의 파고를 헤쳐 온 치열한 삶의 증거물이 곳곳에 쌓여 있었는데, 앞을 내다보니 나는 저 앞 서산에 지는 해로서 미구(????久)에 사랑했던 부모님이나 형님, 누님들처럼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때 나는 내가 떠나기 전에 내 후손들과 나아가서는 내가 속해 살아왔던 이 사회와 국가에 조금이라도 도움될 일을 해놓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남들이 흔히 하는 것과는 좀 다른 것을 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 끝에 찾아낸 것이 가계보(家系????) 제작, 기록물 기증, 회고록 발간 등 7가지 일이었는데 그중 4가지는 이미 완료 되었고, 나머지는 현재 진행 중이다.
첫번 째는 남녀 평등한 새로운 가계보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과거 남성 중심의 족보 체계를 탈피하여 남녀가 평등한 새로운 형식의 가계보를 만드는 일인데, 이 책을 후손에게 물려 주어 우리 집안의 모계 계통 뿌리를 알려 주고 여성 중시의 안목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3년여에 걸쳐 우리 가계를 추적조사한 끝에 한글편과 한자편, 총 32면의 책자형 가계보를 완성하여 2012년 11월 후손에게 전달했다.
두 번째는 개인 기록물을 국가기록원에 기증하는 일이었다. 나 개인의 역사, 기록물이지만 결국 그것은 우리 사회와 국가의 역사이고 증거물이라 생각하여 그 기록물을 유용하게 보존할 단체나 기관에 기증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나는 초등학교 통신표(성적표)로부터 은퇴 시기까지의 중요 기록물을 정리하고, 여기에 아내의 기록물 포함한 122점을 국가기록원에 기증했다. 이 기증은 2015년 6월과 8월, 그리고 2016년 8월 등 3회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 기록물을 기증한 후 국가기록원에서는 내 일평생의 삶을 12시간 동안 구술토 록 하 여 녹 취 하 고 (2015.11.29. 2015.12.05 두 차례 진행), 이를 책자로 만들어 내 자손에게 증정했다. 또 녹취 장면을 고화질 영상물로 제작했는데, 영구보존하여 후세에 역사 연구 자료로 활용한다고 했다.
한편 국가기록원은 2014년 9월부터 2017년 5월까지 “나의 삶과 기록, 역사가 되다”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통신표를 비롯한 내 기증품을 다수 전시하였다. 그리고 2015년 11월 정부 방송 KTV에서“대한민국 기적의 DNA: 기록문화”라는 특집방송을 하면서 나의 기록물 관련 내용을 비중 있게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나와 내 아내의 기록물을 모교인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경영전문대학원 석사과정을 밟았음), 이화여자대학교에도 기증했으며, 또한 고향의 모교 서산초등학교와 내 평생직장이었던 제일은행과 외환은행에도 기증했다.
세 번째는 <사랑의 가족편지>를 편찬하는 일이었다. 힘든 세월 삶의 버팀목이된 우리 가족 간의 편지를 모두 정리하여 우리 집안의 사랑, 협력과 인내의 내력을 후손에게 물려 주자는 취지에서다. 이를 위해 나는 학창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은 편지로부터 최근까지 가족 간 왕래 한 모든 편지를 수집하고, 이를 책자로 만들어 2018년 9월 후손들에게 전달했다.
네 번째는 <유노상의 주례 이야기>를 발간하는 일이었다. 나의 주례 경험과 결혼식에 관한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평생 동안 500여회에 걸쳐 주례를 맡았던 경험과 현재의 예식 절차상 고쳐야 할 점을 종합하여 2020년 10월 책으로 발간했다. 이 책은 유상으로 판매했는데 바로 매진되었다.
다섯 번째는 우리 내외의 기록물집을 발간하는 일이다. 나와 내 아내의 기증 기록물과 후손에게 전달할 기록물의 실물, 사진, 영상 등의 목록과 사진을 집대성하여 책자로 만들어 후손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이 책자에는 <유노상∙강명자 내외 기록물 집>이라는 제호를 붙였고, 현재 편집이 완료 되어 인쇄 및 제본이 진행 중에 있다.
여섯 번째는 <강명자 권사의 성지 순례 사진첩>을 만드는 일이다. 강명자 권사는 내 아내이며, 이 사진첩을 잘 만들어 자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인데 현재 작업 진행 중에 있다.
일곱 번째는 연보형식의 회고록을 만드는 일이다. 1939년 내 출생 시부터 집필이 끝나는 시기(올해 말쯤)까지의 나의 역동적 삶을 기록하여 후손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 2020년 시작하여 현재 3년 째 집필 진행 중에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13여년째 위 7가지 일에 매달려 왔는데 그 중에 개인 기록물을 국가기록원에 기증한 것과 <유노상의 주례 이야기> 책 발간 2가지는 공익을 목적으로 한 것이고, 나머지 5가지는 내 후손을 위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한 5백 년쯤 훗날, 선대 할아버지가 영상으로 나타나 사진 자료를 보여 주며 평생의 삶을 설명해 준다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이겠는가. 진정으로 내 소소한 기록물들이 훗날 중요한 역사자료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내 후손들을 위한 작업은 후손들이 그 자료를 통하여 자신의 뿌리와 근본을 알고, 선대의 삶에서 지혜를 배우고, 가족의 소중함을 새기고, 여성을 중시하고, 그리고 우리 가족 간의 깊은 사랑의 전통을 이어받게 하기 위함이니 부디 내 후손들이 그에 부응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산비탈에 쑥부쟁이, 엉겅퀴도 다 꽃 피우던 한 시절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누구인들 소중하고 아름답던 과거가 없겠는가.(과거는 미화되어 가는 것이라니까) 그런데 그 소중하고 치열하고 극적이고 아름답고 슬픈 과거도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말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당초 내가 의도했던 후손과 사회를 위한다는 목적 이외에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된 것 또한 큰 소득이다. 참으로 나에게는 감사한 일이다.
나는 평생 은행과 금융회사, 그리고 금융회사를 떠나서도 또다시 7년여를 갑종근로소득세를 내는 급여를 받고 일을 했었다. 그러니 경제적으로는 안정된 삶을 살아왔다 하겠으나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이 별로 없다. 자식들은 스스로 벌어 성취하며 살도록 재산을 주지 않는 게 좋겠다는 엄마의 지론을 마음에 담아 두고 각자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온 두 딸에게, 그리고 손주들에게, 나의 이 일들의 결과물이 물질적인 것들을 대신한 정신적 유산이 될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부디 하나님께서 내게 용기와 힘을 주셔서 내가 아직 못다 이룬 나머지 버킷리스트 3가지 일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밀어주실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간곡히 기도 드린다.
※이 글은 2022년 2월 1일 설날 발행 <감사나눔신문>에 그 내용이 요약, 게재된 바 있다. 감사나눔신문은 제갈정웅 동문(상학 65학번)이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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