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9호] 세기의 보물을 찾아서④ / 한영국(경제 8회, 금토상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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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국 회장
 

10여년 전에 터키의 이스탄불을 관광할 기회가 있었다. 지금은 인천공항에서직항이 있지만 그 때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동창회보 작년 10월호에는 러시아의 보물호박방(琥珀房) 이야기를 한 바 있지만 터키와 러시아는 모두 아시아와 유럽, 즉 동양과 서양에 걸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하지만 러시아는 면적이 세계에서 가장넓고 거대한 우랄산맥이 동서양을 구분하는데 비해, 터키는 러시아에 비해 아주작은 나라로 보스포러스라는 좁은 해협을 중심으로 동양과 서양이 나뉜다. 그리고 그 해협의 남쪽 입구에 이스탄불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 도시 역시 동양과 서양에 걸쳐 있다.


이 도시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비잔티움(Byzantium)라고 불렀다. 그런데서기 330년경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1세 황제가 이 지역을 정복하고 동로마제국을 건설하면서 이 곳을 수도로 정하고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라고. “이스탄불”은 그리스어로“도시로(To the City)”라는뜻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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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
 

이스탄불에는 오랜 역사상의 명소와세계적인 보물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성소피아 성당과 토프카프 궁전, 그리고 블루모스크가특히 유명하다.  


성 소피아 성당은 서기 360년 완공된,로마제국과 기독교 총본산의 위용으로오늘날까지 남아있다. 이 성당은그후두번에 걸친 화재로 불타버리고 537년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3번째건립한것이오늘날에이르고 있다. 

성 소피아 성당은 현지어로“하기야 소피아(Hagia Sophia)”라고 부르는데, “하기야”는 신성하다, “소피아”는지혜, 이성이라는 말로“신성한 지혜의 교회”라는뜻이된다. “하기야 소피아”는다시터키말로 전용되어“아야 소피아”로발음한다. 

이 성당은 다른 일반 성당들처럼 앞뒤가 길고 좌우 폭은 좁은 장방형(長方形)구조를취하지 않고, 정방형과 다각형, 원형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집중형 구조를택했다. 장방형 성당에서는 뒤에 앉은 사람들은 말이 잘 안 들리고 분위기가 산만해지기쉽기 때문이었다. 


우선 성당의 본체는 동서 77m, 남북71.7m로 거의 정방형으로 건물을 지었고, 그 지붕에는 거대한 돔형 천장을 설치했다. 그런데 돔의 직경이 33m나 되고,돔 중앙의 높이는 54m에 달해 그 거대한위용에 경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 돔은 그들의 하늘 숭배 사상을 표현한 것이고, 또한 대초원에서 생활하는 동방민족의 이동식 천막의 돔 형태를 본 딴 것이기도하다. 

본당 중앙에는 4개의 대지주(大支柱)를 세우고, 그 동서(東西) 쪽 위에 반원개(半圓蓋, 아치형 덮개)를 설치하여채광을높이고 회당 전체에 집중성을 강화했다.또 본당 중앙홀과 양쪽 화랑 사이에 열주(곢柱)를 세우는 전형적인 바실리카 양식이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고 있다. 본당 천정에 돔 하나만 있다면 좀 무거운 감을 느끼게 할 터이지만 채광창을가진 아치 선이 중앙을 조화 있게 받쳐서거대한 원형 돔이 오히려 공중에 가볍게떠 있는 것 같은 신비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 성당을 3번째 새로 지은 유수티니아누스1세는그헌당식때제단앞에서예배를 올리면서“솔로몬이여 나 그대에게이겼노라”라고 외쳤다는데 이 성당이 얼마나 자랑스러웠으면 예루살렘에 신전을세운 솔로몬의 이야기까지 대두시켜 비교를 했겠는가.

성 소피아 성당은 외관 또한 지상에 솟아있는 거대한 볼륨 감은 위압감이라기보다 오히려 여유롭기까지 하면서도 조금도 빈틈을 주지 않는 절묘한 밸런스를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과연 세계적인 명보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만 그 당시성당 내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성화는 서기 716년~843년까지의 계속된 우상 파괴 운동으로 다 없어지고, 지금 있는 것은843년 이후 다시 만들어진 것이다. 그 당시의 아름다웠던 모자이크 성화는 그만역사속으로사라지고말았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1453년에 와서는 회교국인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드 2세가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후에는 이슬람 교회,즉 모스크가 되어 버렸다는 쓰라린 역사를갖고있다. 당시마흐메드는 기독교성화는 석회질로 다발라버리고 4개의 미나렛(기도시간을 알리는 첨탑)도 세웠다.지금도 그 4개의 미나렛이 그대로 서 있는데 오스만 제국이이 성당을 파괴하지않고 그대로 존속시켜 준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밖에 말할수없다.


이 성당은 그러나 1934년에 다시 한번수난을 겪는다. 터키 근대국가 건설의 아버지라 칭하는 무스타파 케마르 아타츄르크 정부가 이 건물을 박물관으로 개조하고 그 공식 명칭도“Aya Sofya Museum”으로 정하였다. 그리고 이 성당을 박물관으로 개조할때는 화재 등의 재난을 피하기 위하여 목재 사용을 금했다고한다. 

그리고 지난 2020년 7월에 터키 정부는이 건물을 다시 회교사원으로 개조하기로결정했다. 이 결정은종교적 보수층을 결집하여 지지율을 높이려는 대통령의 의도에서 나왔다고 한다. 터키의 역사가 과거로회귀하는것아닌가 싶다. 


다음으로는 성 소피아 성당 가까이에있는토프카프궁전을 찾았다. 

이 궁전은 1453년 메흐메트 2세가 이지역을 정복한 후 오스만 제국의 궁전으로 지었는데, 1,000년 전 그리스인들이지은“아크로폴리스 신전”을 본떠서 건축했다고 한다. 이 궁전은 보스포러스 해협과 금각만(Golden Horn Bay), 그리고 마르마라해(海) 등 삼면이 내려다 보이는위치에 있어 경관이 아주 좋다. 또한 입구부터 내궁(內宮)의 배치 등이 중국의 자금성을 본 뜬 부분이 있는데다가, 터키가 공화국 체제로 바뀐 후 이 궁전이 박물관으로탈바꿈한것도자금성과 비슷하다. 

그리고 메흐메트 2세 이후의 황제들은대대로 선대의 재산을 물려 받지 않고 전쟁터에 나가서 새로 황금, 귀금속 등의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 왔다. 그래서 궁전에는 보물과 재산이 점점 불어났고, 건물 역시 자기의 취미에 맞게 많은 개축하거나증축하여 많은 변화가 있었음은 당연한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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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프카프 궁전
 

궁전이름“토프카프”에서“토프”는대포를 의미하며, “카프”는 문을 의미한다고한다. 궁전문앞에대포를설치해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적군도이문을향해대포를 쏘는바람에 궁전 문이 파괴되기도 했다고 한다. 

궁전박물관에는 옛날 궁전 부엌에서 쓰던 세계 각 나라 도자기 1만2천여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2/3에 해당하는 8천여 점이 중국산이 대부분이고, 일본, 태국 자기도 있다. 그런데 중국산으로분류된 자기 중에 우리 조선 자기도 들어있다. 청화백자 사발인데 안테에 팔괘가그려져 있고, 바닥에 태극문양이 새겨져있다. 설명문에는‘청화백자, 16세기’ (Blue and White Ware, 16c)라고만 적혀있고, 출처는이례적으로밝히지않았다. 


보석 전시장에는 토프카프 궁전의 심볼이라고 할만한 단검이 있는데 절품이라고 한다. 손잡이에 직경 3cm~4cm 크기의 에메랄드가세개박혀있으며, 칼머리 쪽에도 8각형으로 찬란하게 커트된직경 3cm의 에메랄드가 장식되어 있다.그 외에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엄청 많은 귀금속과 보석들이 전시되어 있어 이곳에 오면 보석의귀함을잠시잊을 정도다.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높은 단위에 아 있는 황금의자이다. 앉은 방석자리까지 약 50~60cm에 달하고 등받이가 또한그 정도 되는 순금 덩어리 의자인데, 한신하가 나이 5~6세 되는 어린 왕자의 생일 선물로 헌납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그큰 금 덩어리가 별난 장식도 없이 두리뭉실한 모양이어서 어이가 없었고, 오히려피식하고웃음이나왔던기억이 난다. 

옛날 이 궁전 식당에서는 하루에 천명내지 이삼천 명 정도의 사람이 식사를 했다니 과연 그 규모를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성 소피아 성당 맞은 편에있는블루모스크를 구경했다. 

메흐메드 2세로부터 약 120년후에 술탄(왕)이 된 아흐메드 1세(1603~1617)가지었다고 한다. 

이 모스크는 1609년부터 1616년까지7년에 걸쳐 건축했는데 처음에는 왕의 이름을 따서“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라고했으나“블루모스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내부의 타일이 푸른 빛을 띠고 있기때문이라고 한다. 


내부로 들어서니 과연 실내 전부가 파란색 타일로 장식되어 맑은 하늘빛 같고, 또 기둥이 없어 훤하게 넓은데 바닥에 자리를 깔고 절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중심 돔 높이가 23m, 채광 및 온도조절용 창문 수가 260개나 된다고 하니 내부조명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짐작이 간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건축에 사용된 타일 수가 2만 1천여개이며, 그 당시 가격으로 타일 한 장에 은화 18매분이 들었다고 하니 은화 가치는 몰라도 어마어마한건축비가 들어간 것만은 짐작할 수가 있다.

이 모스크는 미나렛이 6개나 된다. 회교사원의 미나렛은 1개나 2개를 세우는게 보통인데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4개를 세웠고, 아흐메드 1세는 6개의 미나렛 을세운 것이다. 그 뒷이야기는 이렇다.


술탄 아흐메드가 전쟁터에 나가면서공사 책임자에게 Altim(터키말로 Glod)미나렛을 지어달라고 명령했는데 당시외국인 책임자가 터키어에 서툴러서Alti(Six) 미나렛으로 알아듣고 여섯 개를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술탄들은 이 첨탑을 많이세움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과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슬람 최대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회교 사원에는 그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6개의 미나렛을 세웠는데, 이 블루모스크에 6개의 미나렛이세워지는 바람에 첨탑 1개를 더 세웠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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