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상 논단 / 시론

[제185호] 공산주의의 실체, 한∙중∙일의 공산당 / 안태호(경제 5회, 본회 명예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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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하자 이를 저지하고 우크라이나에 친러시아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저지하려고 하는가.


소련은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이 된 후 동유럽 국가들을 공산화하여 세력을 확장해 나갔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집단방위조직으로 나토를 결성했다. 그 후 서방국가들과 공산진영 간에 냉전 상태가 계속되다가 1989년 동유럽 국가들의 공산당이 해체되고 1991년 소련의 연방체제가 무너진 후 일부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하여 러시아는 고립되었다.


1999년 러시아의 대통령이 된 블라디미르 푸틴은 집권 후 수많은 정적들을 탄압하고 살해했으며, 과거 연방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되찾기 위해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합병했고,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본토를 침략한 것이다. 이 기회에 공산주의와 공산당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한국과 중국, 일본의 공산당은 어떻게 창설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1. 공산당이란?
공산당은 공산주의 이론을 기본으로 조직된 정당을 말한다. ‘공산주의’라는 용어는 19세기 전반부터 사용되었는데 K.마르크스(1818~1883)와 F. 엥겔스(1820~1895)에 의해 확립된 이데올로기로 마르크스주의라고도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독일의 철학과 영국의 경제학, 그리고 프랑스의 사회주의를 중심으로 사적유물론과 잉여가치설로 구성되어 있다.
‘공산당’이라는 이름은 1848년 2월 발표된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선언’에서 유래한다. 이 공산당선언은 1847년 2월 독일노동자들이 만든 공산주의자동맹의 부탁을 받아 만든 것인데 여기에는 자본주의의 모순, 생산수단의 국가소유화, 노동자계급의 사회지배 등이 담겨 있다. 이 선언은 그 후 1917년 러시아의 레닌 등 사회주의자(볼셰비키)들이 일으킨 러시아혁명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 때 ‘러시아공산당’이 창설되어 러시아소비에트공화국을 수립했고, 1922년에는 주변 소비에트 공화국을 통합하여 소비에트공화국연방(소련)을 결성했다.
그 이듬해인 1923년 세계 대공황이 일어나자 자본주의 국가들은 큰 혼란에 빠졌으나 소련은 경제개발 5個年계획을 추진하며 산업의 발전과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따라서 그 당시의 자본주의는 낙후된 노동환경과 부의 집중에 따른 노동력 착취 등으로 극히 우울한 상황에 빠졌고, 자본주의 모순의 해결은 오로지 공산주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그 영향으로 당초 4개 공화국으로 출발한 소비에트연방은 후에 15개국으로 확대되었다.


2. 한국의 공산당
한국의 공산당은 일제시대인 1925년 김재봉(1891-1944) 외 18인에 의해서 결성되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한국에는 막스주의 사상이 소개되었는데 특히 김재봉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1922년 러시아 공산당이 개최한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가하여 공산당에 입당하고 1925년 조선공산당을 결성한 것이다. 그러나 이 조선공산당은 1928년 일제의 탄압에 의해 괴멸되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1945년 8.15 해방이 되자, 공산주의자 박헌영이 조선공산당을 재창당하고, 1946년 1월에는 외곽단체인 전평(全評, 전국노동조합전국평의회), 전농(全農, 전국농민조합총연맹), 부총(婦總, 조선부녀총동맹)과 청총(靑總, 조선청년총동맹) 등 여러 단체들을 규합하여 민전(民戰, 민주주의민족전선)을 결성하고 각 분야에 걸쳐 10월 항쟁(대구 폭동)과 같은 대중운동을 주도하였다. 또 당시 미∙소(美蘇) 양국이 조선에대한 신탁통치 논의를 시작하자 통일을 갈망해온 애국 단체들은 신탁통치에 반대했으나, 민전(民戰)은 찬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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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은 1946년 11월 조선인민당 및 남조선신민당과 함께 남조선노동당으로 통합∙결성되었다. 하지만 미군정의 공산당 간부 체포령으로 박헌영은 월북하고, 조선공산당은 남한지역의 남조선노동당과 김일성이 창립한 북한의 북조선노동당으로 양분되었다. 그 후 남조선노동당은 모두 숙청∙체포되었다.
김일성은 1945년 10월 평양에 조선로동당을 창건했다가 1946년 4월 북조선공산당으로 개편하고 그 해 8월에는 조선신민당과 합당하여 북조선로동당을 발족시켰다. 북조선로동당은 1948년 9월 남조선로동당(남로당)과 연합하여‘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출범시키고 1949년 6월 30일 조선로동당으로 통합되었다. 이‘조선로동당’이 곧 우리가 부르는 북한공산당의 공식 명칭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김일성은 적화통일의 야욕으로 6.25 전쟁을 일으켜 막대한 인적피해와 물적손실을 보였다. 하지만 한국의 지식인들에게는 사상 전환의 산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레닌은 일찍이 그의 저서 <국가와 혁명>에서 ‘부르주아국가로부터 프로레타리아 국가로 전환에는 폭력혁명이 필수적이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넘어 사회주의로 전진한다는 것은 역사의 불가피적인 방향이다’라고 말했다. 즉 공산화는 폭력혁명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소련에서 2,000만명, 중국에서 5,000만명의 인민이 희생된 것도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1946년 11월에 한국의 공산당인 남로당이 결성되었지만 반공을 국시(國是)로, 자유민주주의를 국체(國體)로 하는 한국으로서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일이다. 자유시장경제을 부정하고, 사유재산의 국유화와 민주집중제를 강요하는 공산주의는 범세계적으로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현실 아닌가? 개인의 의사와 전체의사의 일치를 전제로 반대의사를 배격하고 언론의 자유를 탈취하는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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