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8호] 재정정책의 전환, 큰 틀에서 보아야 . 큰 정부라는 시대정신에 직면한 보수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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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국의 경우 세금 징수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한데다 납세 의식이 높지 않아 조세저항 또한 만만치 않다. 자연 경제 규모 대비 세수 비율이 높지 않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많이 높아졌지만 아직 선진 복지국가 수준에 못 미친다. 선진국의 경우, 시대흐름이 정부 크기의 주요 변수이다. 2차 대전 이후 1970년대 말까지는 소득세 최고세율이 70~80%에 달하는 복지국가형 큰 정부가 대세였고, 1980년대로 들어서면 감세, 규제 완화 등으로 상징되는 작은 정부의 시대가 이어진다.
그러나 이런 시장주의의 흐름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역풍을 맞게 된다.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는 식의 양극화가 표면화되면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부 역할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날로 심화되는 기후 변화, 코로나 위기를 겪으며 제기된 공공 의료의 필요성, 미중 갈등을 계기로 촉발된 전략 물자의 자체 생산 등 정부 역할의 변화를 예기하는 구조적 요인들이 부상했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통합된 시장에서 개별 국가의 비교우위에 따라 국제 분업이 이루어지는 세계화 시대에서 정부의 적극적 시장 개입과 자국 우선주의가 정당화되는 시대로 대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큰 정부라는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정부 재원이다. 지출 수요는 느는데 이를 감당할 세수가 부족하면 경제 안정이 흔들릴 것이다. 한시적인 재정적자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과거의 보수적 재정 운영 덕분에 외환위기 같은 외부 충격을 견뎌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십 수년 꾸준히 흔들리던 재정 규율이 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속절없이 무너지며 이제는 경제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 보수의 기치를 든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예산안이 발표됐다. 이전 정부에 비해 지출 증가율을 낮추고, 재정적자도 3% 이내로 억제하며, 건전 재정을 뒷받침할 재정 준칙도 마련한다고 한다. 당연히 긍정적인 변화지만 새로 출범한 정부의 재정 전략치고는 빈약해 보인다. 시대흐름인 적극적 정부 역할에 대한 비전 없이 그저 이전 정부하고 비교하며 뭔가 달라졌음을 강조하는 수준에 머문다.
복지 포퓰리즘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선거가 다가오고 민생이 흔들리면 보수 정권도 적자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건전 재정도 정부 기능 확대에 대처할 세수 확보가 있을 때 가능하다. 예산 조정 수준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정권의 임기는 5년이지만 정부의 임기는 무한대다. 후대가 기억하는 유능한 보수 정권이 되려면 애매한 작은 정부 타령에서 벗어나 단기와 장기를 아우르는 큰 틀의 정책 비전부터 보여야 한다. 복지와 환경, 전략산업 지원 등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대안을 갖추며 동시에 시장 기능을 강화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 어느 때 보다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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